재테크/부동산

부동산 정책만으로는 집값 못 잡는다 / 집값 잡기 위해 필요한 접근

돈바다 항해사 2021. 1. 30. 01:56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부동산 가격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정책 입안가들도 많은 분석과 고심 끝에 계속해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겠지만, 그런 정책이 시장에서는 의도대로 먹히지 않고 오히려 상승을 더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미친듯이 상승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요. 저는 그 중에 아래와 같은 인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보다 좋은 투자처가 없다

저 명제만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를 조금 더 뜯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처로서 부동산의 위상

저게 무슨 말인지 말하기 위해서, 일단 아래와 같은 전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처에는 부동산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주식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식의 속성을 생각해 보자면, 비교적 소액으로 거래가 가능하며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서 개인 컴퓨터나 휴대폰으로도 쉽게 거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수가와 매도가가 맞기만 하면 즉시 거래가 체결됩니다. 그래서인지 주식은 등락폭이 큽니다. 수익이 날 때는 크게 수익이 날 수 있지만, 반대로 손실을 보게 되는 상황에서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주식입니다. 그래서 수익률도 높고 위험성도 높습니다. (물론 종목에 따라서 다르지만 다른 투자처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단기간에 큰 수익도 낼 수 있고, 반대로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거래가 다소 느립니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서로를 찾고 계약서를 쓰는 데만도 한참 걸리는데, 비교적 거래 금액이 크다보니 중도금, 잔금을 나누어서 주고받게 됩니다. 게다가 소유권 이전이 등기되는 것도 며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부동산은 거래에 수반되는 세금이 있습니다. 취득, 보유, 양도 시에 각각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고 팔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부동산은 어느 정도 가격 방어가 있는 편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오랜 기간에 걸쳐 완만하게 우상향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며, 가끔 있는 부동산 폭등기를 제외하고는 실제 가격의 움직임도 그러합니다. 주식에 비해서 단기간에 큰 가치변동은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에 손실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에 하나 손실을 본다 하더라도 크지 않습니다.

부동산을 여러 투자처와 각각 비교해볼 수 있겠지만, 저는 대중적인 투자 수단인 주식과 부동산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통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지 고려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은 위험성수익률입니다. 위험성은 낮을수록, 그리고 수익률은 높을수록 좋은 투자처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부동산은 저위험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 가지 조건(위험성과 수익률) 중에서 위험성을 더 많이 고려하는 것 같습니다. 즉, 우선 원금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한 후,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낮다면 얼마나 수익이 날 것인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세 제도입니다.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임차인은 (2021년 1월 현재 기준으로) 집값의 약 70~80% 정도의 보증금을 내고 2년 동안 거주할 권리를 갖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거주에 필요한 관리비만 지출할 뿐, 월세는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은 돌려받습니다. 이런 형태의 임대차 계약은 전 세계적으로는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전세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전세에 관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마음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첫째, 임대인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집을 매수하고,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의 가격대로 모두 주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전세 세입자를 찾아서 계약할 수 있다면 그 전세 보증금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이미 임대차 계약이 되어 있어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가 있는 집을 사는 경우도 있고, 혹은 새로운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집에서 살 전세 세입자를 찾아서 같이 계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갭투자'를 시장을 교란시키는 투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둘째, 임차인 입장에서는 원금을 그대로 돌려받기 때문에 비용의 손실이 없습니다. 이자비용, 목돈의 기회비용도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낸 돈과 받는 돈을 따져보면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닙니다. 어차피 월세로 거주했다면 월세로 지출하는 돈의 합이 훨씬 더 크므로 월세가 더 손해입니다. 전세로 내가 거주하고 싶은 곳에 2년 동안 거주하면서 돈을 모으다가 2년 후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참고로 제 말은 이러한 인식이나 전세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인 임차인의 판단인데요. 2년의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낸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것에 있어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낍니다. 어쨌든 2년 동안은 안정적인 거주를 확보했고, 보증금도 나중에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므로 그 사이에 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자산을 불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이득과 손실을 따져보고 이득이 손실보다 크기 때문에 내린 나름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목돈이 묶여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금 손실'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수십 년 전 과거에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고, 투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식도 있었기 있었기 때문에 전세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매우 쉬워진 지금도 이렇게 목돈의 운용보다는 원금 보존만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금 손실을 두려워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이렇게 '원금 보존'에 집착하고 있을 때, 부동산은 지금까지는 그 조건을 딱 만족시켜주는 안전한 투자처였습니다. 주식처럼 단기간에 큰 상승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은 여러 투자처들 중 저위험 투자처에 속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여 선호했습니다.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고수익이다

부동산이 투자처로서 위험성이 낮다면, 수익률도 낮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투자처와 비교해 보자면 수익률이 그렇게 낮지도 않습니다. 사실 이 점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동산은 실수요가 기본적으로 있는데, 여기에 다른 투자처보다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투기수요까지 더해지는 것입니다.

부동산은 그동안 꾸준히 물가상승률보다도 더 가격이 상승해 왔습니다. 특히 환금성이 좋고 비교적 규격화가 잘 되어 있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스케일로 보면 다시 떨어졌던 가격이 회복되고 그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물론 모든 부동산이 항상 상승가도만 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신도시의 상가, 신축빌라, 오피스텔 등은 그 가치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 잘못 투자했다가 오히려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자면 그런 하락을 메꾸고도 남을 정도로 어딘가에서는 항상 큰 상승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동산은 항상 우상향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 사려면 오늘이 제일 싸다,
집 사서 물린 건 시간이 지나면 올라가지만 한 번 팔면 다신 그 가격에 못 산다

위와 같은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어떤 방해를 하더라도 투자할 사람은 투자한다

이쯤되면 부동산에 투자 안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저위험, 고수익인데 부동산에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들은 모두 부동산에만 집중한 정책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세금에 관한 정책, 대출 제한에 관한 정책, 1가구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게 여러 가지 제한을 거는 개인적 차원의 정책, 투기지구,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에 제한을 거는 지역적 차원의 정책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들이 지금까지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집값 상승을 견인해 왔습니다.

저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투자하기로 마음먹었고, 투자금까지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틀어막아도 그 돈을 어딘가에는 투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그 투자처의 정답이 부동산이었습니다.

주식을 계속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동산에 비해서 위험한 투자처라는 점은 위에서도 언급했는데요. 그 위험을 무릎쓰고 투자하려면 수익률이라도 높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식의 수익률이 원금 손실의 리스크를 안고 투자할만큼 그렇게 높은가요?

물론 2020년부터 2021년 초에 걸쳐서는 주식의 수익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하락했고,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증시의 상승을 이끌었기 때문에 최저점과 최고점을 비교해 보았을 때 더욱 극적으로 상승한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 경기가 좋았던 요인도 있습니다. 이 이례적인 시기를 제외하고 그 전을 보자면 우리나라의 증시는 '박스피'라고 불렸습니다. 하락도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지만 상승폭도 제한이 있어서 큰 수익을 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지난 30년간의 코스피 지수입니다. 일정 주기로 박스권을 형성하다가 탈출하고, 다시 박스권을 형성하다가 탈출하는 모습입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크게 하락했다가 다시 크게 반등하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투자 상품의 불완전판매, 사기, 횡령, 배임,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의 금융 범죄에 너무 관대합니다. 그래서 그런 범죄가 많이 일어납니다.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1.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은 이를 대놓고 어깁니다. 적발된 증권사들은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을 받습니다. 그저 벌금 조금 내면 끝입니다.
  2.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주식이 배당으로 지급되었고, 그것이 그대로 시장에 유통되었던 사고도 있었습니다. (삼성증권 배당 사고)
  3.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고위험군의 파생상품에 가입시켜 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우리은행, KEB하나은행의 불완전 판매)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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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투자자가 원금 손실을 감수해 가면서 부동산 외에 주식이나 다른 투자처에 투자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굳이 소중한 투자금을 저런 곳에 투자할까요? 그보다 더 좋은 부동산이라는 투자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필수 생활 요소인 집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에 있어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습니다. 부동산은 주식이나 다른 투자 방법과는 달리, 누구나 필요로 사는 집을 투자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집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투자자들은 그런 인식을 아예 신경도 안 씁니다. 이미 어딘가에 돈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모든 것을 투자 수단으로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투기수요를 근본적으로 억제하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기준은 상대적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되고, 돈이 적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보다 더 돈이 적은 사람 앞에서는 부자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투자처의 비교 역시 상대적입니다.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높은 투자처 A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안전하고 더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 B가 있다면 B가 더 좋은 투자처입니다. 돈이 있다면 A가 아니라 B에 투자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부동산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갖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모두 부동산에만 국한된 정책들입니다. 다른 투자처를 뚫어주지 않고 부동산만 억제해서는 부동산의 투기수요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부동산보다 더 안전하고, 부동산보다 더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는 아직 없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이유로, 부동산보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부동산 투자를 그만두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요.